한지윤은 팔목시계를 보았다 오후 6시10분 논현동의 카스피 호텔까지는 길이 막혀도
한지윤은 팔목시계를 보았다 오후 6시10분 논현동의 카스피 호텔까지는 길이 막혀도 40분이면 충분하다 7시에 약속이니 10분쯤 늦게 들어가도 될 테니까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주차장의 시멘트 바닥에 부딪치는 구두 뒷굽의 울림이 명쾌했으므로 한지윤은 심호흡을 했다 김성규는 이상적인 남자는 아니었지만 그야말로 성골 출신이다 명문대를 나온 데다 병원장 집안이며 본인도 전문의 과정을 밟고 있는 귀공자인 것이다 더욱이 친구 소개로 만난 터라 인연도 자연스럽지 않은가 김성규의 얼굴을 떠올린 한지윤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어떤 잔잔한 음악도 어울렸다 특히 카스피 호텔의 어둑한 라운지에서 약한 칵테일을 두잔쯤 마시고 났을 때는 더욱 그렇다 김성규는 분위기를 띄울 줄 아는 남자인 것이다 구석쪽 기둥 옆에 주차된 포도색 스포츠카 앞으로 다가간 한지윤은 원격 버튼을 눌러 잠금장치를 해제시켰다 그때 뒤쪽에서 인기척이 났으므로 한지윤은 힐끗 한번 시선을 주고는 문의 손잡이를 쥐었다가 머리를 돌렸다 사내가 바짝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무슨하고 한지윤이 입술만 떼었을 때였다 뒷머리에 강한 충격이 왔고 동시에 눈앞에서 흰 섬광이 번쩍이는 것 같더니 한지윤의 의식은 끊어졌다 한지윤은 김성규와 마주보며 카스피 호텔의 라운지에 앉아 있었다 라운지는 언제나처럼 어둑했다 그런데 음악이 흐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앞에 앉아있는 김성규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흐릿하게 상반신만 떠있을 뿐이었다왜 그래 무슨 일 있어한지윤이 물었으나 김성규는 대답하지 않았다 화가 난 한지윤이 이제는 목소리를 높였다그러지마 이 마마보이야그때서야 목소리가 들렸다깨어나는 모양입니다 형님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한지윤은 퍼뜩 눈을 떴지만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어 눈을 떴습니다 하고 다시 사내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때서야 한지윤의 머릿속에 지하 주차장의 장면이 기억났다 바짝 다가선 사내의 얼굴도 떠올랐고 그 순간 한지윤은 자신의 손발이 묶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지윤의 눈에 사물이 보인 것은 그로부터 10분쯤이나 ...